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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지 않기 위한 여행 - 부제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여행기 및 여행꿀팁 2019. 11. 23. 16:11
    위시빈 여행작가 Youngmo Im님의 여행기 및 여행꿀팁입니다.

    역사의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스스로에 대한 치유를...


    416, 518, 523...
    숫자로 기억되는 잊지 못할 날들입니다.

    2016년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을 보내기 전, 잠깐 짬을 내어서 기억해야 할 장소들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러다가 잊어버릴 것 같아 떠난 각성 여행이기도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며, 어둠이 빛을 이겨서도 안 됩니다.
    빛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환하게 발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났던 빛들을 기억합니다.

    동행해준 십년지기 직장동료에게 고맙습니다.
    뜻이 하나이니 동료를 넘어서 동지입니다.


    p.s. 여행기 등록을 위해서 비용 부분을 입력했습니다. LPG와 통행료 등 교통비는 제외되었습니다. 남자 둘의 여행은 숙박비용보다는 먹는 비용이 역시 우세하네요. 아, 다시 한 번 이 코스로 떠나고 싶어요.


    여행국가: 한국
    여행일: 3일


    #수지구청

    이번 여행은...
    평일에 2박3일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기회일 거다.
    9월말, 10년 넘게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퇴사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다들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여행이나 좀 다녀오지?'였으나, 사실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시간적 여유는 많았다. 경제적 여유는 눈 딱 감고 '간과'한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발목을 잡은 건 정신적 여유였다. 마음이 편해야 여행이라는 것도 생각을 해볼 텐데, 마음이 불편하고 조급하니 그 단어마저도 사치스러워 보였다.
    아내는 그 모습조차도 불안해 보였나 보다.
    언제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을 꺼낼지 궁금해 하던 차다. 분명 이 남자, 심리 상태로 봐서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텐데 도서관과 케이크매장과 집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더 수상하다고 한다. 자기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며, 의욕마저 잃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이 싫단다.
    12월을 넘기기 전에 행선지가 어디든 간에 일단 떠나기로 했다.
    사실 혼자 떠날 계획이었다. 해외로 훌쩍 떠날까도 싶었지만, 그냥 차를 끌고 국내 한 바퀴 도는 여행이라도 해볼 참이었다.
    이 여행에 불쑥 동행이 생겼다.
    여행이나 떠날까 하고 이야기를 꺼냈고, 그의 입에서 팽목항이라는 단어가 숙제마냥 나왔다.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슬슬 잊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그 날의 일이다.
    팽목항을 기준으로 간단한 2박 3일 일정을 세우고 그에게 보여준다.
    이 여행에 동행할 것인지, 아니라면 혼자라도 떠날 요량으로...
    그가 같이 나선다.
    수지구청 더 알아보기

    #수원역

    동행
    수원역 9시.
    이번 여행을 동행하기로 한 그와 만난다.
    같은 직장 10년 이상 같이 지낸 동료다.
    10년 동안 같은 사무공간에서 지냈다는 것은, 어쩌면 활동시간으로 따지면 결혼 18년된 아내와 보낸 시간보다 더 길 것이다. 아내와 나눈 이야기보다도 그와 함께 회의하고 세미나하고 농담을 나눈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그와의 식사, 그와의 한 잔, 그와의 여행(출장이긴 하지만)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런 그와 함께, 수원역에서 만나서 첫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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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교육청

    기억해야 할 기억교실
    단원고에 있던 학생들의 교실들을 안산교육청 별관으로 옮기고, 416 기억교실이라 명명하였다.
    2학년 1반에서 10반까지, 별관의 2층 공간을 이용하여 기억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였다.
    들어서는 순간, 멍해진다.
    꿈 많은 애들이 있어야 할 그 공간에 덩그러니 빈 책상과 의자만 놓여 있다.
    교실의 모습은 그대로다. 새학기를 맞이하여 꾸민 환경미화 게시판, 1학기 시간표, 14년 4월에 멈춘 달력, 급훈까지도... 시간은 멎은 채 공간만 남았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들떴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앉았어야 할 자리인데, 이제는 그들을 추억할 물건들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교실의 흔적 속을 걷는다.
    달리 할 말도 없었지만, 입을 열어 말을 꺼내는 순간 가슴 속 울먹임을 들킬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그저 손 끝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흔적을 읽는다.
    돌아오지 못한 250명의 아이들, 그리고 11분의 선생님들.
    그들을 기리는 방법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또 그렇게 잊어버릴 것 같아서 찾아왔다.
    이제, 그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난다.
    안산교육청 더 알아보기

    #한상가득

    점심은 남도 스타일 백반으로
    서해안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점심을 먹을 위치를 군산으로 정했다.
    군산의 맛집 검색에 나선다. 다소 무거운 여행이긴 하나, 여행은 여행이고, 여행에서 먹거리는 중요하다.
    군산 맛집으로는 짬뽕집과 같은 중식당들이 많이 검색되었으나, 그 중에서 백반집을 하나 골라서 목적지로 정한다.
    점심내기를 위한 퀴즈를 건다.
    "현재 군산시 인구는 대략 몇 명일까?"
    40만 명은 되지 않을까라는 그와, 30만 명 정도에 불과할 거라는 나의 추측이 맞서며, 서로 그 판단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하며 정보를 검색한다. 27만 명 수준이다. 그가 밥을 사기로 했다.
    날씨는 겨울이라는 계절답지 않게 포근한 편이다.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뿌연 연무가 풍경을 방해한다.
    평일이라서 도로 상황은 여유롭기 그지 없다.
    금강이 서해를 만나는 풍경을 보면서 채만식의 '탁류' 이야기를 꺼냈다.
    '레디메이드인생'은 술술 읽었으나, 유독 '탁류'는 펼치기만 하면 턱 하고 걸려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탁류'를 찾아서 읽어야지 내심 생각한다.
    하긴, 몇 시간 전 안산에 들렀을 때에도 심훈의 '상록수'를 떠올리긴 했다. 자발성 숙제가 하나둘 늘어난다.
    목적지로 정한 '한상가득'이라는 식당에 도착한다.
    백반집이라고 해야 하나, 한정식집이라고 해야 하나. 백반집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고, 한정식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서민적이다.
    메뉴판의 가격을 보니 백반 7천원, 정식 12천원...
    그냥 백반으로 주문한다. 남도 스타일 식당이라면 백반만 주문하더라도 충분하다.
    구운김 포함 19첩 반찬이 하나씩 깔린다.
    고급스러운 반찬은 아니더라도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젓가락이 지나치는 반찬 없이 모든 반찬을 남김없이 먹는다.
    1인 7천원의 배부른 만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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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방조제

    새만금 방조제
    내비게이션은 자꾸 고속도로 쪽으로 운전을 '지시'하나, 그의 말을 들을 내가 아니다.
    서쪽 끝까지 달려가 새만금 방조제로 접어든다.
    군산에 들러서 남쪽으로 간다면 새만금 방조제를 타야 한다.
    새만금 방조제는 지도를 바꾸었다. 지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함께 바꾸었다
    91년 착공된 이후 2010년 공사를 마친 것이 현재 33.9km에 이르는 방조제란다.
    간척지라고는 하지만 아직 바다가 나눠져 있는 모양새다.
    인간이 자연에 손을 대어서 좋은 결과를 거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울퉁불퉁 이어지며 갯벌을 이루고 게와 조개를 숨기고 철새를 부르던 그곳은, 과속하기 딱 좋은 직선도로 방조제로 탄생했다.
    농경지 확대를 빌미로 시작된 공사는, 여러 사회적인 마찰과 갈등으로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산업 및 관광단지를 구성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말았다.
    또 한 번,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미안할 일을 한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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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강

    변산의 절경을 놓치다
    변산 쪽 여행이 처음이라는 일행을 위해서 일부러 변산 해안 드라이브를 하려고 마음 먹었으나, 결국 내비게이션의 잔꾀에 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수 년 전 '변산 대명리조트'까지 가는 해안도로의 절경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그곳을 목적지로 삼았으나, 내비게이션은 '빠른 길'을 추천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듯 천하태평이다. 그새 또 내륙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빠른 도로가 생겼다.
    내 여행 스타일을 보면 그냥 종이지도책 펼쳐두고 국도 번호 찾아가면서 가는 편이 어울린다. 지리정보 업계 종사자로서의 자괴감이다.
    꿩 대신 닭으로 채석강에 잠시 머문다.
    지질 전공자인 일행은 이 지대의 지층 구조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화강함, 편마암, 퇴적층을 이루며 멋진 지층 구조를 보여주는 광경을 보며, 중생대 선캄브리아시대 운운 하는 말을 듣긴 했으나,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내가 형태소 분석, 음운 변이, 화용론적 기법 등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물 빠진 갯바위에서 놀고 있는 꼬마게가 없는지 잠시 훑었으나, 이내 포기하고 다시 길을 서둘러 떠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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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

    급히 달려온 걸음을 순간 멈추며...
    지금까지 시간을 잘못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군산에서 출발하면서 팽목항을 목적지로 검색했을 때 2:45 라고 되어 있기에, 2시 45분에 도착 예정이라면 꽤 널널하겠다고 생각하며 새만금과 변산반도로 잠시 발길을 돌렸었다.
    하지만 채석강에서 팽목항을 검색했는데도 2:30 으로 표시되는 것을 보고, 이미 3시인데 왜 2시 30분에 도착한다는 것인지 잠시 의문을 품다가, 이것이 도착시간이 아니라 소요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팽목항에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일몰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일몰 예정 시간은 17시 30분. 도착 예상 시간은 17시 35분.
    이제는 한눈 팔거나 옆길로 새어서는 안 된다.
    서둘러 차를 몰아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목포로 빠져나와 해남을 거쳐서 진도로 접어든다.
    이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얌전히 따를수 밖에 없다.
    뉘엿뉘엿 우보천리하던 해가 본격적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다행히도 17시 25분에 팽목항에 도착했고,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는 해의 끝자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급히 달려온 이곳, 순간 걸음이 한없이 느려진다.
    공간의 무게감이 급습한다.
    공간에 담겨 있던 고요함, 적막감, 보이지 않는 슬픔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진 찍겠다고 둘러보는 것마저도 죄처럼 느껴진다.
    기억을 위한 공간.
    기억만큼이나 공간의 휑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머리도 가슴도 텅빈 느낌이다.
    어둑해질 때까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본다.
    바다가 무섭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다. 다가서기조차 두렵다.
    저 속에 있었던, 그리고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들자, 그냥 서있지도 걷지도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한다.
    걸음은 한 없이 느리다.
    낮동안 따스했던 햇살을 거둔 팽목항은 겨울 바닷바람이 점점 매서워진다.
    이렇게 추운데...라고 말을 꺼냈다가 끝맺음을 못 했다.
    노란 리본과 깃발이, 끄트머리가 바람에 닳아 해진 채로 펄럭댄다.
    팽목항 더 알아보기



    #전체 여행기 보기(여행지도, 비용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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